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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여행 (리야드, 에르오라, 마라야)

minji3 2026. 7. 13. 17:25

목차


    '개발'과 '보존'은 반드시 싸워야만 하는 걸까요. 저는 배낭여행 중 수백 년 된 돌길과 통유리 빌딩이 나란히 선 도시를 걸으며 그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사우디아라비아 얘기를 접하고서야 그 감각에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리야드의 마천루와 에르오라의 붉은 황야는 그 질문에 말 대신 풍경으로 답합니다.

    리야드: 사막 위에 세운 시간 가속기

     

    리야드를 두고 누군가는 "그냥 돈 많은 나라의 과시용 도시"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말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302미터 높이의 왕국 중심 대첨탑(Kingdom Centre Tower) 꼭대기에 설치된 '스카이 브리지'는 단순한 전망대가 아닙니다. 극한의 더위라는 물리적 제약을 건축으로 극복한 결과물입니다. 금융 지구인 KAFD(King Abdullah Financial District)는 건물과 건물을 공중 복도로 연결해 지상의 열기를 피하는 구조인데, 여기서 KAFD란 리야드 북부에 조성된 복합 금융 허브로, 흔히 '사막의 맨해튼'이라 불립니다. 기후라는 조건 자체를 설계에 녹여낸 방식이 꽤 인상적입니다.

     

    2024년 개통한 무인 자율주행 지하철도 주목할 만한 사례입니다. 지하 30미터 구간에 '지하 숲' 개념을 적용하고, 지상의 빛을 끌어들이는 스테인리스 캐노피 구조물인 '어반 페리스코프(Urban Periscope)'를 설치했습니다. 어반 페리스코프란 잠망경 원리를 응용해 지상의 자연광을 지하 공간으로 끌어내리는 채광 장치를 뜻합니다. 기술이 사람의 감각을 얼마나 세심하게 배려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라고 봤습니다.

     

    한편 전통 시장에서는 아라비아 전통 의복인 토브(Thobe)와 손으로 짠 아가알(Agal, 머리에 두르는 검은 끈)을 팔면서 그 옆 칸에서는 '중국산 낙타 피규어'를 쌓아두고 있다고 합니다. 이걸 모순으로 볼 수도 있고, 글로벌화가 일상에 스며든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 쪽에 가깝습니다. 세계 어느 전통 시장이든 생존을 위해 시대와 협상해 왔으니까요.

     

    • 왕국 중심 대첨탑(302m): 스카이 브리지에서 리야드 전경 조망
    • KAFD 금융 지구: 공중 복도로 연결된 복합 도시 구조
    • 무인 자율주행 지하철: 2024년 개통, 지하 30m 지하 숲 조성
    • 무돔 모스크(Domeless Mosque): 사막 장미 결정체에서 영감을 받은 현대식 이슬람 건축
    요약: 리야드는 기후라는 제약을 오히려 건축과 기술의 동력으로 삼아, 전통과 첨단이 충돌하지 않고 병렬로 달리는 도시를 만들어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Riyadh)의 도심 전경

    에르오라: 시간이 굳어버린 붉은 황야

     

    리야드가 '시간의 가속'이라면, 에르오라(AlUla)는 '시간이 응고된 장소'에 가깝습니다. 이곳의 핵심은 헤그라(Hegra) 암벽 묘지군입니다. 헤그라는 나바테아 문명(Nabataean civilization)이 남긴 유적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우디 최초의 세계문화유산입니다. 나바테아 문명이란 기원전 4세기경부터 아라비아 반도 북서부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상인 왕국으로, 요르단의 페트라를 건설한 바로 그 문명입니다(출처: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묘지는 위에서 아래로 깎아 만든 독특한 방식으로 조성됐습니다. 절벽 상단부터 조각을 시작해 아래로 내려가며 완성하는 이 기법을 '탑-다운(Top-down) 암굴 조각법'이라고 부르는데, 중력을 거스르는 작업 순서가 당시 장인들의 기술 수준을 잘 보여줍니다. 까마귀 계단(Crow Staircase)이라 불리는 좁은 통로와 독수리 부조 장식 같은 세부 조각들은 고대 장례 문화가 단순한 매장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 예술이었음을 말해줍니다.

     

    자연도 만만찮습니다. 풍화 사암이 만들어낸 코끼리 눈(Elephant Eye) 지형은 거대한 바위에 뚫린 타원형 구멍 사이로 사막 풍경이 액자처럼 담기는 구조인데, 인간이 만든 헤그라 유적과 자연이 깎아낸 이 지형이 같은 공간에 공존한다는 사실 자체가 에르오라의 매력입니다. 저 경험상 이런 '우연한 공존'이 주는 감동은 어떤 설계된 관광지도 쉽게 흉내 내지 못합니다.

     

    사막 캠핑카 숙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외관 전체가 미러 패널로 덮여 붉은 암석을 그대로 반사하고, 내부에는 360도 파노라마 창과 주방·욕실이 갖춰져 있습니다. "사막에서 캠핑이라면 불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숙소야말로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아도 고독한 황야의 감각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영리한 해법이라고 봅니다.

    요약: 에르오라는 나바테아 문명의 암굴 유적과 자연 풍화 지형이 겹쳐진 곳으로, 인류가 쌓은 시간과 자연이 쌓은 시간이 같은 높이로 만나는 장소입니다.

    마라야: 사라짐으로써 존재하는 건축

     

    마라야 음악회장(Maraya Concert Hall)은 처음 사진을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9,000제곱미터가 넘는 외벽 전체가 거울로 뒤덮인 이 건물은 기네스 세계 기록에 '세계 최대 미러 건물'로 등재돼 있습니다(출처: Guinness World Records). 마라야(Maraya)는 아랍어로 '거울들'을 뜻합니다.

     

    이 건물이 의미 있는 이유는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건축물이 스스로를 지움으로써 주변 천년 암석과 사막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 즉 '건축의 자기 소거(Self-erasure)'라는 개념 때문입니다. 자기 소거란 건물이 시각적으로 환경에 흡수되어 존재감을 최소화하는 설계 철학으로, 자연과 인공물 사이의 위계를 의도적으로 역전시킵니다. 인간의 첨단 기술이 자연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자연에게 무릎을 꿇는 형식이라는 점에서 저는 이 건물이 매우 진지한 태도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개발은 결국 자연을 밀어낸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마라야가 그 명제에 꽤 묵직한 반례가 된다고 봅니다. 물론 대규모 관광 인프라 개발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설계 철학의 방향만큼은, 자연을 배경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주인공으로 복원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사우디가 리야드에서 초고속 질주를 이어가면서도 에르오라에서는 속도를 완전히 내려놓는 것,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선택했다는 점이 저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현대적 실천처럼 느껴졌습니다.

     

    온고지신이란 옛것을 익히고 그를 토대로 새것을 창조한다는 뜻으로, 사우디의 도시 전략이 이 개념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약: 마라야는 거울로 자신을 지우는 '건축의 자기 소거'를 통해, 첨단 기술이 자연에 경의를 표하는 방식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에르오라 헤그라 유적은 일반 여행자도 입장할 수 있나요?

    A. 네, 현재는 일반 관광객도 가이드 투어 형태로 입장이 가능합니다. 다만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보호 구역이기 때문에 개인 자유 관람은 제한되고 공식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야 한다는 점을 미리 확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사전 예약이 필수라는 의견이 많고, 성수기에는 조기 마감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Q. 리야드 무인 자율주행 지하철은 외국인 여행자도 탈 수 있나요?

    A. 리야드 메트로(Riyadh Metro)는 2024년 정식 개통 이후 일반 시민과 외국인 방문객 모두 이용할 수 있습니다. 교통 카드 방식으로 운영되며, 관광 명소와 공항을 연결하는 노선도 포함되어 있어 여행자 접근성은 꽤 좋은 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노선 및 운영 시간 등 세부 사항은 현지 도착 전 최신 정보를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Q. 마라야 음악회장에서 실제로 공연이 열리나요?

    A. 네, 마라야는 단순 관광 구조물이 아니라 실제 공연이 열리는 복합 문화 공간입니다. 국제적인 아티스트를 포함한 다양한 콘서트와 문화 행사가 정기적으로 개최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건물 외관의 특성상 일몰 전후 시간대에 방문하면 미러 패널에 사막 노을이 반사되는 장면을 볼 수 있어 공연 관람이 아니더라도 방문 가치가 충분하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Q. 사우디아라비아는 여행하기에 까다로운 나라 아닌가요?

    A. 과거에는 관광 비자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강했는데, 사우디는 2019년부터 관광 비자를 개방했습니다. 복장 규정이나 음주 금지 등 지켜야 할 문화적 기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까다롭다기보다는 다른 문화권을 방문할 때의 기본적인 예의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비자 신청은 온라인으로 가능하고 입국 절차 자체는 비교적 간단하다는 후기들이 많습니다.

    결론

     

    배낭여행 중 느꼈던 그 어렴풋한 감각, 과거와 미래가 같은 골목을 걷는 듯한 그 묘함을 오랫동안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그 감각이 단순한 신기함이 아니라, '무엇을 지우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어떤 도시의 태도를 몸으로 느낀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어제의 풍경이 오늘 사라지는 시대에, 사우디의 선택은 하나의 질문을 남깁니다. 우리가 미래를 향해 질주할 때, 뒤에 남겨두고 가야 할 것과 끝까지 붙들고 가야 할 것은 무엇인가. 리야드와 에르오라, 그리고 마라야는 각자의 방식으로 그 질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여행을 고려 중이라면, 도시 하나만 보지 말고 이 두 공간의 대비를 직접 몸으로 경험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douyin.com/jingxuan?modal_id=7653177854674357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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