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스위스 베른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퇴근 시간, 직장인들이 방수 가방 하나만 등에 메고 아무렇지 않게 아레강에 뛰어드는 광경입니다. 임산부도, 노인도, 강아지도 함께입니다. 단순한 레저가 아니라, 이 도시가 자연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빙하수에 몸을 맡긴 퇴근길, 직접 보기 전엔 알기 어렵습니다
여행 전에 "베른 사람들이 강에서 퇴근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과장된 표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강변에 서서 보면 단 몇 분 만에 수십 명이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아레강을 흐르는 물은 알프스 빙하수(glacial meltwater)에서 이어지는 수원입니다. 여기서 빙하수란, 고산지대의 만년설이 여름철 기온 상승으로 녹아 내려온 물을 의미합니다. 수온이 낮고 불순물이 거의 없어 수질이 뛰어나며, 베른 시내에서는 이 물을 별도 정수 없이 그대로 마시는 시민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한여름 한강 수영이 엄두도 안 나는 한국의 도심 하천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12미터 높이의 교각에서 망설임 없이 뛰어내리는 청년들의 모습, 강변에 앉아 손을 흔들며 웃는 시민들의 풍경은 직접 보지 않으면 쉽게 믿기 어려운 장면으로 꼽힙니다. "특별한 날의 행사"가 아니라 평범한 화요일 오후의 일상이라는 점이 더욱 놀라운 지점입니다. 이 통근 방식은 18세기 어부들이 배를 타고 강을 오가던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수백 년의 역사가 현재의 라이프스타일로 이어진 케이스입니다.(출처: Bern Tourism 공식 사이트).
- 아레강 상류에서 시내까지 도보 귀환 포함 총 소요 시간 약 3시간
- 수온은 한여름에도 18~20°C 내외로, 국내 한강 여름 수온(25°C 이상)보다 현저히 낮음
- 수영을 못하는 경우 구명조끼(life jacket) 착용 후 참여 가능하며, 초보자는 얕은 입수 구간(wade-in zone)에서 시작 권장

도시설계가 달라야 삶이 달라진다는 걸, 강변 인프라에서 확인했습니다
이 퇴근 문화가 자생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배경에는 베른 시의 치밀한 도시설계(urban design)가 있습니다. 도시설계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공간을 어떻게 경험하고 이동하는지를 기준으로 도시를 구성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베른은 이 원칙을 아레강에 적용해 강을 시민 모두가 쓸 수 있는 생활 인프라로 만들었습니다.
강변을 따라 무료 수영장(Freibad)이 여러 곳 운영되고 있으며, 200개 이상의 입수·출수 지점이 공식 지정되어 있습니다. 일부 주택가에는 강으로 바로 내려갈 수 있는 개인 통로가 집 앞에 나 있어, 말 그대로 현관을 나서면 퇴근길인 구조입니다. 이런 환경이라면 차를 탈 이유가 크게 줄어든다는 점도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공공 도시계획(public urban planning)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대중교통 인프라를 자연 자원과 연계한 저탄소 통근 모델입니다. 공공 도시계획이란 정부나 지자체가 교통·녹지·주거를 함께 설계해 시민의 이동 편의와 환경 보전을 동시에 도모하는 행정 전략을 의미합니다. 스위스 연방환경청(BAFU)의 자료에 따르면, 스위스 도시들은 자동차 의존도를 줄이는 비동력 이동(non-motorized mobility) 정책을 수십 년째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출처: 스위스 연방환경청(BAFU)).
이런 구조를 보고 나면, "왜 베른 사람들은 강에서 퇴근하냐"는 질문보다 "왜 우리 도시는 강을 일상에서 밀어냈냐"는 질문이 더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물론 강마다 수질과 유속 조건이 다르고, 안전관리를 위한 인프라 없이 그저 개방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다만 베른의 사례가 흥미로운 건, 제도와 인프라를 먼저 깔고 문화가 따라온 게 아니라, 오랜 시민 문화를 행정이 뒤에서 받쳐준 순서라는 점입니다.

이 라이프스타일이 던지는 화두, 효율보다 조화가 가능한가
아레강에서 흘러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한 가지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바로 워라밸(Work-Life Balance)입니다. 워라밸이란 일과 개인 생활 사이의 균형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요즘 한국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자주 언급되지만 실제로 체감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베른에서는 이 단어가 구호가 아니라 강물 위에 실물로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베른 직장인들 중 일부는 조기 퇴근을 하거나 점심시간을 활용해 강에 들어갑니다. 기업 차원에서도 수영복을 챙겨 출근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허용된 문화라고 합니다. 현지에서 만난 한 시민이 "오늘은 4시에 일 끝내고 왔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는 일화는, 그 말이 자랑이나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처럼 들렸다는 점에서 강물 뛰어드는 장면만큼이나 인상적인 대목으로 꼽힙니다.
물론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두고 시각이 갈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건 스위스라서 가능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스위스의 1인당 GDP는 2024년 기준 세계 최상위권으로, 경제적 여건 자체가 다르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건 단순히 돈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도시가 자연을 통제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삶의 배경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리고 그 태도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선택이 수십 년간 쌓인 결과라는 것입니다.
"효율(Efficient)보다 조화(Harmonious)를 우선한다"는 도시 철학이 강물 위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모습은, 경쟁과 속도 중심의 도시에서 느끼는 피로감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레강 수영, 수영을 못해도 참여할 수 있나요?
A. 네, 구명조끼(life jacket)를 착용하면 참여 가능합니다. 베른 시는 강변 곳곳에 입수·출수 지점을 200개 이상 지정해두었고, 얕은 구간(wade-in zone)에서 시작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다만 유속이 빠른 구간이 있고 강바닥에 자갈이 많아 초보자는 반드시 지정된 구간을 이용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Q. 아레강 수질은 실제로 깨끗한가요? 직접 마실 수 있다는 게 사실인가요?
A. 알프스 빙하수에서 이어지는 수원 덕분에 수질이 매우 높은 편입니다. 베른 현지에서는 강물을 직접 마시는 시민들을 실제로 볼 수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수질 관리 기준도 엄격하게 유지됩니다. 다만 수영 직후에는 유속과 부유물 상태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공식 안내를 확인하고 판단하는 것이 좋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Q. 베른 아레강 퇴근, 여행자도 참여할 수 있나요?
A. 참여 자체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방수 가방(drybag)에 옷과 소지품을 담아 입수하는 방식으로, 장비는 현지에서 구입하거나 대여가 가능합니다. 여행자들은 상류 진입 지점인 마츠(Marzili) 수영장 근처를 출발점으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지 안전 안내판과 구조원 위치를 먼저 확인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Q. 한국에서도 이런 강 통근 문화가 가능할까요?
A. 수질과 유속 조건이 다르고 도심 하천의 인프라 수준이 베른과 다르다는 점에서, 그대로 이식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반면 한강이나 수도권 지류 중 일부는 수질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어, 베른처럼 입수·출수 지점 지정과 안전관리 체계를 먼저 갖추면 유사한 수상 여가 문화가 가능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제 생각엔, 인프라보다 도시가 강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의 태도 변화가 먼저인 것 같습니다.
결론
아레강 강변에 서서 사람들이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꼽힙니다. 이 장면이 유독 오래 남는 이유는, 그게 단순히 "특이한 나라의 특이한 풍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시가 자연을 일상으로 끌어안았을 때 시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말이 아니라 강물 위에 떠가는 사람들의 얼굴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효율보다 조화를 먼저 선택하는 도시 설계, 수백 년간 이어진 시민 문화, 그것을 제도로 뒷받침하는 행정의 결합이 지금의 베른 아레강 퇴근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당장 같은 방식을 도입하기는 어렵더라도, "우리 도시는 강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한번쯤 던져볼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스위스 베른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여름철 아레강 강변은 단순한 관광지 이상의 경험을 줄 것입니다.